보통 오분이면 굽는 닭꼬치를 30분이 넘게 구우라고 지랄을 떨면 삼십분을 굽는척한다. 30분을 구우면 닭이 어떻게 되겠는가? 숯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다됐는데 뭘 더구우라고 해요? 하면 또 싸가지가 없느니 돼먹지가 않았느니 하면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닐것이 분명하다.

그냥 굽는것만 가지고 뭐라고 하는것이 아니다 소스를 바르면 또바르라고 하고 바르면 또바르라고 해서 소스가 바닥에 질질 흐르는데도 또 바르라고 하고 나중에는 쿠킹호일로 싸서 굽고 날리가 아니다. 아주 닭꼬치 기계를 점령을 했다.

 

 

술을 하도 처먹어서 시간개념도 없고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아주 옆에서 정신을 쏙빼놓는다. 그래서 나는 이놈을 초능력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안팔아줘도 좋으니까 제발 좀 오지 못하게 해야 겠다.

특히 이 초능력은 잘 먹히는 것 중의 하나인데 간단하다. 누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단지 그것을 맘속에 정한다. 내 앞에서 사라지고 다시 볼일이 없게 될 것이라고 단지 생각하고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연인 것 같은 일들이 우연치 않게 일어나 그사람이 정말로 사라지게 되는데 나는 이런 방법으로 세계 10대 진상리스트에 올라도 손색이 없는 우리 가족들과 그에 뒤지지 않는 몇몇 친구들을 손쉽게 처리한바 있다.

그날..., 한줄기 찬바람이 겨울의 시작을 알리기 시작하며 어디선가 굴러온 낙엽이 가게 문앞을 한바퀴돌아 공중으로 부양하며 사라지고 있었을 때였다. 동네 패거리 두명을 이끌고 진상영감탱이가 찾아왔다. 옆 테이블에서는 중혁이가 혼자서 맥주 다섯병을 흡입하고 있었다.

21

 

진상 영감이 끌고온 두 사람은 진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작히 진상영감의 진상짓거리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창피해서 같이 안들어 오려는 것을 진상영감이 질질 끌다 시피해서 데려왔다. 한 놈은 거의 중혁만큼이나 덩치가 컸고 한명은 작달만했다.

이렇게 동네사람들을 끌고 와주니 나로서는 얼핏 감사해야 할것 같지만 그게 사실 그렇지 않다. 동네사람들이 우리가게오고 싶어도 이 영감탱이한테 들킬까봐 올수가 없다. 밖에서 보이면 바로 들어와서 합석하고 또 진상짓거리 하면 쪽팔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멀리보면 손님을 불러오기는 커녕 쫒기만 하는것인데 지딴에는 자기가 이동네 터줏대감으로서의 권력을 휘두르며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면서 감사를 바라는 눈치다. 꼬치 6개 소주 2병 18,000원을 계산하고 자리를 떴는데 왠지 서둘러 나가는 듯한 눈치다. 진상영감이 신발끈 묶는 사이 다른 영감님이 계산했다.

 

꼬치를 굽고 중혁이한테 와서 잠깐 이야기 하고 있는데 자리를 서둘러 뜨는 것이 뭔가 부자연스럽다. 진상영감의 진상짓거리를 지켜보던 중혁이 손님이 가고 나자 한마디 했다. 또 중국에서는 사람죽이는데 얼마고 어쩌고 저쩌고..지난번에 읊었던 내용이다.  눈을 보니 방금전에 어딘가에 쏘았을 것이 분명한 독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진상 영감 자리에 고추가루가 있는것이다. 고추가루는 매운것을 원래 좋아하는 중혁이때문에 특별히 마련한것으로 다른 손님한테는 내놓지 않았던 것인데 그것이 저쪽 자리에 가있으니 궁금할수 밖에 없다.

 

고추가루가 왜 저깄지?

 

그리고 며칠동안 진상 영감이 보이지 않았다. 진상 영감의 단골아지트인 동네 수퍼에서 마주쳤는데 날 보면 의례 한마디씩 하는 훈계+따뜻한 조언을 그날 따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냥 미소만 짓고 얌전히 앉아있었다.

약발이 먹혔음을 그때야 깨닳았다. 그림이 하나 그려졌다. 고추가루를 가져가면서 중혁의 독기가 가득한 눈과 마주쳤을 것이고 생명에 위협을 느껴 꼬랑지를 내린것이다. 나와 중혁이 친해 보였으니 그럴만 할것이다.

 

염력을 방출한지 하루 이틀 뒤에  일이 해결된것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럴수도 있겠지..우연이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이런일은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은 우연히 이루어진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을 머리를 써서 억지로 해결하면 일은 무척 부자연스러우며 많은 부작용이 속출하며 결국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염력을 쓰면 아주 쉽고 편안하며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일이 처리되며 아무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

 

내가 만일 그 진상영감을 내손으로 해결하겠다고 같이 맞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폭행이나 폭언등으로 한사람이 다치기 전까지는 일이 해결되지 않을수도 있고 서로 적이 되었을 것이며 불편한 관계가 결국 상처로 남을 것이다.

22

 

세상에는 뇌를 써야 하는 많은 일들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상처를 남긴다. 만일 염력으로 이뻐질수 있다면 아무런 흠이 없고 완벽하겠지만 성형으로 이뻐지려고 하면 많은 부작용을 낳으며 자연스럽지도 않으며 결국 이뻐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외과적인 수술을 감행하는 모든 병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뇌에 복종하여 어떻게 해서든 뇌로서 모든것을 해결하려고 하며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달려가며 약과 주사와 메스에 의지하며 자신을 망쳐간다. 병원은 염력의 반대편에 있다. 염력이 당신의 가능성에 의지하는 것이라면 병원은 당신의 불가능에 의지한다.

 

그리고 몇주 후 한 동안 안보이던 진상 영감이 또 나타났다. 집에 손님이 왔다며 꼬치 7개를 사갔다. 꼬치 7개를 구어주고 다시한번 염력을 방출했다. 약발이 떨어질때 쯤 되었으니 한번 더 염력을 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며칠 뒤였다. 인터넷을 보니 이런 기사가 올랐다.

관련기사 http://blog.naver.com/tbroadgg?Redirect=Log&logNo=169255011

고물가격이 폭락하여 폐지와 페트병을 주워 생활하던 노인들이 폐지줍는 일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폐지주워서 짭잘한 수입을 올리던 진상영감이 더이상 닭꼬치를 사먹을수 없게 된것이다.

 

 

당신 해도 해도 너무하네..무슨 당신땜에 고물값이 폭락해. 경제가 당신 손아귀에 있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수년전에 강남을 필두로 해서 전국 아파트값이 미친듯이 뛰었던 일을 기억하는가? 사실은 그것이 내염력으로 인해 이루어졌던 것이라면 믿을수 있겠는가?

23

 

전국 아파트값 상승

그당시에 나는 엄마란 작자의 빚을 갚아주다가 신불자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상계동에 아파트 두채가 있었고 신불자 신세로 내명의로 할 수 없어 모두 엄마의 명의로 돌려놓았다.

그 와중에 또 엄마씨가 내명의로 쓰고 있는 신용카드에 연체가 발생하여 독촉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은행과 상담한후 삼천만원 받았던 현금 서비스의 원금을 조금씩 갚아나갈 것을 설득했지만 엄마는 거절했다. " 니가 갚아라 니가. 니가 갚을래?"

나는 더 이상 엄마를 혈육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와의 인연을 끊어야 한다.

엄마와 결별하기 위해서는 엄마명의로 해놓은 아파트를 팔아야 한다. 내가 전송한 염력은 아파트를 팔고자 한 염력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엄마와 결별할 것이라는 염력을 발생시켰고 그 염력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아파트가 팔렸던 것이다.

 아파트를 팔지 않으면 결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내 재산이 엄마명의로 되어있는데 어떻게 결별할 수 있겠는가.

그때가 오세훈씨가 서울시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어느날 나는 지하철 가판대에서 신문 헤드라인을 하나 보았다. 오세훈 시장이 강남을 세계적인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난 어이가 없었다. 정치라는 것은 낙후된곳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 그렇지 않아도 눈총을 사고 있는 부유층들이 살고 있는 강남을 살리겠다고 대놓고 광고를 할 필요가 있는가?

강남이 어떤 이유로  지극히 사랑스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고 속으로 할 일이지 굳이 저렇게 하면 안되는 것인데...나는 혈를 끌끌 찼다.

며칠후 강남 아파트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화살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로 돌아갔다. 네이버포털게시판에는 입에 담을수 없는 말로 노무현을 욕하는 글들로 도배되었다.

그당시는 이명박이 대선을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만일 서울 시장의 실수라 인정되면 큰 타격을 입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알바생을 시켜 서울시장에게 돌아갈 화살을 노무현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되었고 실제로 그러한 글들이 가끔 올라왔다. 한나라당이 알바생을 고용해서 악플달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한 소년이 손가락으로 새고 있는 댐의 구멍을 막아 댐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는 말을 들은적 있는가? 나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악풀을 막아 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24

 

 

포탈에서는 쏟아지는 댓글로 흐뭇하게 돈을 벌고 있는 듯했고 정부에서는 왜 그대로 방치하면서 욕을 먹고 있는지 이해가 잘 안갔다.

며칠후 노무현 대통령은 특별방송을 내보내면서 곧 아파트 값을 정상화 시키겠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자 또 정치가 무슨 장난이냐면서 기다리라는 것이 말이 되냐며 쌍욕이 양념으로 벌겋게 버무려져 댓글로 쏟아져 나왔다.

다시 다음날 방송에서는 국정운영이 무슨 장난이냐며 항의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정부에서 댓글에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조작된것임을 몰랐고 국민의 소리인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나는 사실 노빠도 아니고 정치에는 사실 그닥 관심이 없었다. 뉴스도 잘 보지 않는 편이고 신문도 읽지 않는다. 노무현이 처음으로 야당에서 선출된 대통령이며 권력의 독식을 끊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만 권력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뭐 노무현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김치가 없으면 깍두기가 반찬이 되는 것이고 깍두기나 김치나 다 고만고만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던 와중에 신의 계시였을까? 누군가 아는 지인을 한분 만나게 되었고 나는 대화중에 노무현이란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노무현에 대해서 좋게 평가하고 있었고 그것은 어떤 권력이나 정치적 선동의 침이 발라져 있지 않는 순수한 주관으로 느껴졌다. 원래 귀가 얇은 나는 그래서 노무현의 편에 서보기로 했다.

악플의 경우에도 종류가 있을터인데 이 경우는 악플도 좀 경우가 특이해 보였다. 대개의 악플은 악플로 그치지만 선풀에 또 악플을 달지는 않는 듯 하다.

그런데 댓글을 잘 살펴보니 누군가 선풀을 달게 되면 그 선플이 가려지도록 갑자기 악플을 쏟아내 묻혀지게 하거나 그 선플에 악플이 수십개씩 달리면서 선플이 지쳐 나가떨어지게 되는 것으로 파악이 되었다.

무엇인가 일관된 조직적인 힘이 아니면 일어날수 없는 메카니즘이라고 할까..정치적 댓글 알바라는 주장에 심증이 가게 되었다.

원래 밤잠이 없는 나는 밤새워 댓글 작업에 들어갔다. 새벽닭울릴때까지 했는데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고 무척 재밌었다. 악플에 하나씩 반대의견을 달게 되었고 그러면 줄줄이 다시 악플이 달렸는데 보통 사람들은 여기서 나가 떨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악플 하나하나에 모두 다시 반대의견을 달고 다시 새로운 악플이 올라오면 또  다시 질세라 반대의견을 다는 식이었다.

야 너 알바 얼마받니 나도 좀 취직시켜 줄래? 머 이런식으로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댓글 수준이 그냥 쌍욕 수준으로 길가다 넘어지면 그게 다 노무현 개xx 때문이라나..하는 식이었고 질보다 양이 중요했다.

그러기를 삼일째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25

갑자기 수천개씩 달리던 노무현 악성 댓글이 몽땅 사라지고 정부에 긍정적인 글 하나만달랑 남았다.

정부의 콧기름이 작용했던 것이 분명한데 그동안 진작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그것을 백성의 목소리로 착각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악플속에서 살아남은 내 댓글이 눈에 띄자 그제서야 정부에서는 댓글이 알바생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며 사건을 마무리 한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아파트값이 미친 듯이 뛰면 집없는 서민들은 힘들겠지만 집 가진 사람들은 노무현에게 감사해야 할 형편이었고 집 한채쯤 가진 사람들이 국민들의 사실 대부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설령 그것이 노무현 탓이었다고 쳐도  대중적인 욕먹음은..좀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사실 욕을 먹어야 할사람은 노무현도 아니고 서울시장 오세훈도 아니고 한나라당도 아니고 바로 나였다. 내가 아파트를 올린 주범이었고 내가 욕을 먹었어야 했는데 그 화살이 결과적으로 노무현한테 돌아갔으니 카르마는 나에게 그 책임을 물어 악성댓글을 막는 일을 시켰던 것이다.

카르마는 원인과 결과이다. 원인이 있는곳에 결과가 떨어지고 결국 내가 원인을 일으켰으니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댓글 작업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것이 설마 내 힘으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고 그냥 돕고 싶은 심정에서 댓글을 단 것 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뭐 나름 짐작은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짐작이지 뭐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겠어? 착각도 어지간히 하셔야지..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두 개의 그림이 있다.

아래는 내가 엄마와 아직 혈육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을 때의 그림이며


실제사진입니다.

아래의 그림은 엄마와 혈육의 관계를 끊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실제사진입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이 어떤의미가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며 여러 가지 의미를 붙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 나에게 있어서 해석은 보다 간단하다.

첫 번째 그림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연결되어있는 자식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탯줄은 육체는 분리되었지만 아직도 부모와 정신적으로 떨어질수 없는 상황을 그렸던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엄마로 인해 경제적으로 시달리기 시작하고 있었던 때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육이라는 인연으로 인해  떨어질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두 번째 그림은 엄마와 떨어지기 위해서 그렸다. 그림을 그리면 그대로 실현되는 이상한 현상은 이십대 초반부터 이어져 왔었다. 나는 단지 엄마와 떨어지기 위해서 탯줄이  떨어진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을 그린때는 아파트 값이 치솟기 바로 얼마전이었던 것이다.

십년동안 오르지 않던 아파트가 갑자기 오르고 팔리지 않던 집이  팔림으로서 엄마와 나는 서로 얽혀있던 재산정리를 끝내고  결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림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26

 

전생의 인연

 

손없는 할아버지는 우리 가게의 초특급 vip였다. 거의 매일 오시다 시피 하셨다.

막걸리 한병에 꼬치두 개 드시고 절대로 과음하지 않으신다. 가끔씩 두병으로 초과되기는 하지만 언제나 정량을 지키며 몸생각 하신다. 탄음식은 싫어하시는지 꼬치에 탄부분이 있으면 가위로 정성스럽게 잘라내고는 했다.

내가게의 첫손님 그리고 파리날리는 곳의 단골..이정도면 쉽지 않은 인연임을 직감하고 있다. 분명 그는 전생에 나와 어떤 관계에 있었다. 밝혀내야 한다.

최면으로도 내 전생을 보진 못했지만 결과를 유추해보면 전생은 추론할수 있다.

 

태생 병신인가봐요.

글세..자세히는 못봤어. 아마 그렇겠지.

선청성 장애를 조선족들은 그렇게 지칭하는가 싶다. 손없는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중혁은 나를 만났던 때 이상으로 반색했다.

중국에서 보따리 무역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향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담뱃불도 척하고 붙여주는등 넉살이 대단했다. 워낙 사람따르기를 좋아하기는 하는 놈이지만 좀 달라보였다.

 

그 할아버지 오늘 왔어요?

아니..이틀에 한번정도와..

음..내일이면 또 오겠군..

 

내심 기다리는 것 같았다. 무척 마음에 들었던것이 틀림없다. 도데체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물론 할아버지가 손은 없지만 인품은 중후했다. 목소리도 그렇고 생긴것도 그렇고 어느 대기업 회장님 같은 포스다.

비록 지금은 지하철에서 물건 팔고 있지만 어느때는 잔돈도 받지 않는 센스도 가졌다.

돈아끼겠다고 먹다담은 술 가지고 들어오는 진상 영감탱이하고는 차원이 다른 분이셨다.

그러니까 날 따라다녀..

어느날 술에 취한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키워주고 싶다는 듯이 이야기 했다. 지하철 돈벌이가 제법 쏠쏠하기는 한가보다.

중혁과 나 그리고 손없는 할아버지 세사람의 인연은 그림이 쉽게 그려진다.

덕망있고 온화한 성품으로 보아 나는 전생에 삼장법사였고 중혁은 저팔계였으며 손없는 할아버지는 손오공이나 사오정쯤 되었다고 보면 된다. 깝죽대다가 뭔 죄를 지었겠지. 그래서 손없이 태어난 것이다.

송오공은 실화를 각색한 전설이 아닐까?

아니면 이러한 그림도 그려진다. 할아버지는 관우 중혁은 장비 그리고 나는 유비였다.  좋은건 다 자기가 할려그래.. 뭐 어쩔수 없다. 원래 전생 탐험하다보면 공주였다느니 왕자였다느니 하는 말 많이 나오니 억울하면 당신도 어느나라 왕비였다고 걍 찍으면 된다.

 

하여튼 뭔지는 모르지만  이들 세사람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이 만져졌다. 그러던 어느날 티비에서 한 끔찍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와 할아버지는 귀를 기울였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토막살인한뒤  매장했다. 여자는 자주 집을 나가 다른 남자를 만나왔고  이를 못마땅히 여긴 남자가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여자가 죽을 짓을 했네.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중후한 인품의 결정체인 할아버지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지는 몰랐다. 순간 나는 할아버지의 전생이 보였다. 굳이 최면을 통하지 않고도 마음을 읽으면 그 사람의 과거와 전생을  읽을수 있다. 그편이 최면보다 더 정확하다. 최면으로 보는 전생은 상상력이 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생에 할아버지는 누군가를 살해했다. 단지 배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로 인해 현생에서 손을 잃게 된것이다.

정말 인자해 보이지만 지킬박사와 같이 잔인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점은 우리아버지와 동일하다.

부정하고 싶지만 손없는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너무 많은것을 닮아있었다. 외모와 목소리 그리고 인품..정량을 지키는 식사습관,  탄 것은  절대로 먹지 않으려 했던 행동.

한사람은 부자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남들 하기 어려운 학교공부에 유학까지 마쳤으며 좋은 직장에 들어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한사람은 손이 없이 태어나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 과연 같은 사람일수 있을까? 그러나 둘은 무척 흡사했다.

 

억지로 꿰맞추어 보자면 한사람이 두사람으로 분할될때 반드시 같은 운명을 타고 태어나지는 않을수도 있다고 본다. 다양한 삶을 체험하고자 하는것이 그의 목표일것이다. 극과극의 삶이 그에게 필요할수도 있지 않은가.

또는 극과 극의 삶으로 태어나 하나는 베푼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고 다른 삶은 지은 죄에대한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편이 죄와벌을 모두 한꺼번에 받는것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너 하루에 한 대씩 열흘간  맞을래 아니면 한꺼번에 몰아서 하루에 열대 맞을래. 하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부잣집에 태어났지만 가난을 동경했다. 그분의 삶은 손없는 할아버지의 삶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우산을 주어서 기워서 썼으며 십년전 옷을 그대로 입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누렸던 부의 혜택을 입지는 못했다.

또한 생각하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중혁은 여러모로 동생과 흡사했다.

하얗고 잡티하나 없는 뽀얀 피부 . 작게 찢어진 눈 살짝 들린 윗입술..그리고 커다란 고추...숙성된 이후 한번도 동생의 고추를 본적이없지만 완성되어가기 이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본적은 있다. 그리고 자기말로는 그렇다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즉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중혁은 아버지와 나 그리고 동생이 다시 만난 다른 몸속의 같은 영혼일 수도 있다.

 

27

 

.

조개구이 무한 폭식 1만6천원

새로생기자 마자 옆집 해물탕집의 손님을 초토화 시켜 버린 어디선가 대박나고 확장해온듯한 노천스타일 식당으로 껍데기와 삼겹살을 즐겨먹는 중혁이가 탐내는 외식코스다.

지난번에 자네가 쐈으니 언제한번 조개구이 쏘겠다고 하니까 꼭 그렇게 형식적으로 갚아야 하겠냐며 형이니까 사달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때되면 하겠단다. 말은 아주 청산 유수다. 물에 빠져 죽어도 입은 안가라앉을 포스다.

한 두번 당해본 게 아닌 나로서는 맷집도 늘어가는 것같다. 왠지 여유가 생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냥 건달은 아닐것 같다. 그리고 설령 건달이라고 해도 주변의 무늬만 사람새키인 건달들과는 다르며 잘만 조절하면 쓸만하기도 하겠다는 촉이온다.

며칠후 중혁은 막일을 일찍 끝내고 돌아와 나한테 오늘은 형이 좀 쏴달라고 부탁한다. 어제 외상먹은 것은 아직 안갚았지만 기꺼이 중혁을 데리고 조개구이집으로 향했다. 빼갈을 한잔 마시고 온 상태였는데 빼갈은 순 곡주로 만든 것으로 도수가 높아도 소주처럼 먹고나서 골때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조개구이집을 가기에는 이른시간이었다. 아직 4시 반 밖에 되지 않았다. 어제쓴 실장갑을 빨아 탁자위에 널어놓은 것을 아직 걷지도 않은 것이 보였다. 대신 언젠가 한번 가자고 했던 반월호수에 가자고 했다.

 

그럴까?

그래..조개구이는 갔다와서 먹자.

 

금정역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이면 대야미라는 곳에 도착한다. 대야미에서 내려 버스로 두어 정거장 가면 나오는 곳인데 바다처럼 넓은 호수로 저녁마다 사람들이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고 낚시도 하고 기타도 치는 멋진 공원이 조성되어있다.

한때 한 이년간 초야에 묻혀 살아 보겠다고 전셋집을 뒤지던 적이 있었다.  오이도까지 내려갔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 다시 서울쪽으로 올라오다가 가장 녹지가 많이 형성된 곳을 발견한곳이 대야미였고  판자집을 하나 발견하여 2년간 묻어지냈다.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그냥 쳐들어가서  방을 달라고 했더니 마침 방이 있단다. 보증금없이 월세 15만원에 계약했다.  나름 행복했던 2년이었다. 그리고 반월호수는 거기서 걸어서 20분을 가면 나오는 곳으로 내가 즐겨찾는 산책코스였다.

노가다를 마치고 빼갈 한병을 마시고 온 중혁이를 끌고 반월 호수를 향했다. 그땐 몰랐었지만 지하철 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차라리 버스를 타거나 택시타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땐 그걸 잘 몰랐고 나는 택시나 버스타는 것을 죽기 보다 싫어하기 때문에 살살 꼬셔서 지하철을 태웠다. 두 정거장지나 내리고 나면 끝인줄 알았겠지.. 형 뭐야 어디있어? 사방을 둘러봐도 호수는 그림자도 안보이자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28

끌려가는 길은 무척 길었다. 중간중간 중혁이는 길바닥에 벌렁 누워서 못가겠다고 버텼다. 그래서 버스를 잡기로 했는데 버스가 오지 않아 다시 원행을 떠났다. 그래봐야 고작 걸어서 삼십분 거린데 엎어지면 코닿을데지만 걷기 싫은 사람에게는 멀긴 하다.

우여곡절 끝에 탁트인 호수에 도착한 후 근처의 매운탕 집으로 향했다. 고생끝에 낙이 있다고 웅장한 호수와 잘 꾸며진 공원을 보니 힘들었던게 다 사그라진 모양이다.

매운탕하고 막걸리하고 가마솥밥 등등 오만원어치를 쐈는데 지난번에 그만큼 얻어먹었으니 뭐 대단한건 아니지만 고개를 접시에 처박고 먹는 폼이 무척 황송한 모양이었다. 잡어 매운탕이라는데 큰 생선이 없고 빠가사린지 뭔지 크기는 해삼만하고 비늘도 없는 미끈덕 거리는 시커먼 생선이 몇개 들어있었다. 보기에도 별로고 딱히 맛이 대단한것도 아니어서 그닥 탐탁지 않았는데 중혁이는 맛있다는 둥 접대용 멘트를 날렸다.

어쨌거나 비닐로 둘러싼 허름해 보이는 식당안에 땔깜을 가득 쌓아두고 연탄난로안에 불을 때고 있는 모양이 운치있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확실히 장작불이 전기난로와는 쨉이 안된다. 멀리까지 은근히 열이 전달되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원적외선과 울트라 캡숑 아로나민 골드 레이저빔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불을 때시는 60세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장님은 험상궂어 보이는 중혁때문인지 왠지 긴장해 있는 듯 보였다. 딱보니 조폭 스타일이니 누구라도 그럴만 하겠지만 그렇기도 했을 것이고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이분은 원래 긴장하고 사시는 분이셨다. 말하는 톤이 하도 특이해서 혹시 공직에 있었던 분 아니냐고 하니까 맞다고 한다.

 

중혁이 중국 교포인지는 말투를 들으면 금방 알테니 이야기가 중국인에 대한 내용으로 흘렀다.

중혁: 사댕이는 중구기니 마내도 김정이나 매한가지요.

아저씨: 삐약 삐약 ~~~~~435^%^#%&#@@@@@

아저씨는 머릿 속에 새가 지나가듯 중혁의 이야기가 끝날때마다 침묵으로 답변했다. 뭘 알아들어야 대답을 하던지말던지 하지. 처음에 내가 중혁이를 만났을 때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었다.

사당에는 중국인이 많아도 금정역이나 마찬가지라는데요.

그래도 몇 달 같이 있었다고 조금 통역이 가능했지만 나도 아직 삐약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탔는데 이게 워찌된일인지 지하철역에서 갈아타지 말고 바로 버스로 집까지 가잔다. 어차피 그 버스가 집까지 도착을 안하니 버스를 타면 내려서 한참 걸어야 할텐데 그래도 그렇게 하겠다니 지하철하고 무슨 왠수가 졌나보다.

 

한참동안 빙빙돌더니 집에서 두정거장이나 떨어진 이마트 앞에 도착했다. 오줌싸러 야산에 올랐는데 왠 누가 버린 자전거를 하나 주었다. 잠깐 놓고간 거 아닌지 의심갈 정도로 멀쩡한 자전거다. 이것 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중혁이는 자전거에 올랐고 나는 뒤꽁무니에 매달려서 집까지 편히 왔다.

 

다음 날 집앞에 왠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더란다. 자전거 도둑 잡는줄 알고 놀래서 담벼락옆에 숨어있었더니 옆집아저씨가 마누라 잡는 통에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것이라고..

29

 

 

중혁의 실체

 

꼬치구이 식당의 바닥은 흔해빠진 시멘트 바닥으로 볼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시장바닥의 떡복이 집같은 궁상맞은 모습의 원인이 바로 이 바닥에 있는 듯 했다.

검정색 페인트를 하나 사다가 중간에 한칸만 칠하면 그럴듯할 것 같다. 작업을 완료하고 테이프를 뜯어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기절하는 줄알았다. 중혁이가  나를 유리창 너머로 뚤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이야....

중혁은 고기를 한덩어리 사왔고 같이 구워먹으면서 아침에 경찰 들이닥친 얘기 그리고...또 중국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무슨 말을 그렇게 종알종알 잘하는지..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지방방송이었고 나는 라디오를 듣는것과 비슷했다.

오치컵뚜기파크크하테푸하마카카하.

이소리는 아프리카 부족이 점심먹기전에 잡아온 멧돼지를 앞에놓고 춤을 추면서 부르는 소리가 아닙니다. 중혁이 뭐라고 뭐라고 조선족 말로 지껄이는 소린데 자꾸 듣다보면 그 안에서 하나하나 단어를 몇 개씩이나마 끄집어 낼수 있고 그 단어를 연결하면 대강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한 20만원만 주면 여자 한명 부를수 있지 ?  한국에 온지 얼마안되서 여자 한명 부른적있었어요.

나는 고추도 커요. 여자가 아프다고 안한대요. 한번하고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또하고..그랬어요. 형도 그런적 있지요?

괜히 지어낸 말이 틀림없다. 지고추 큰걸 뭐 내가 확인해보자고 할 것도 아닌데 뭔말인들 못하겠는가. 그런데 사실... 어제 반월 호수 가던 중에 중간에 오줌이 마렵다며 중혁이 풀밭에서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볼일을 보고 있었을 때 였다. 뒤에서 보니..헐..완전 변강쇠였다. 마치 소방수가 물뿌리듯이 사방으로 흔들고 있었는데 물줄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삼천만의 추억의 영양간식에서 그런 폭포같은 물줄기가 나올수 없다고 짐작되었지만 그래도 모든것은 확인해보지 않고는 장담할수 없는 일이다.

고추크기는 물론이려니와 여자를 불렀다는 말도 왠지 괜히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나는 화려했던 과거의 단편을 잠깐 들려주었다.

어떤 여자가 호텔로 부르더니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이십만원 주더라....

중혁의 얼굴이 굳었다. 거의 다먹긴 했지만 중혁은 갑자기 입맛을 잃은 듯이 보였다. 벌떡 일어서더니 모자를 눌러쓰고 가버렸다.

가께.

뭐야..지가 물어봐놓고.. 지는 이십만원 주고 했는데 나는 이십만원을 받고 했다니 자존심이 상할만도 하지..내가 말을 잘못했나? 어쨌든 그가 더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얘기에 비위가 상했을수도 있고 그보다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뜻도 된다. 그닥 궁금하지가 않는듯 했다.  아마 내동생 같았으면 비위가 상하건 말건 그 이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을 것이다.

 

 

내얘기는 사실이었지만 여자를 불렀다는 중혁의 이야기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나중에 하는 얘기가 그냥 해본소리란다.

사실 걔가 20만원어치 고기를 사먹지 20만원주고 여자를 부를 애가 아니다. 나는 고기를 먹어도 항상 사다가 집에서 먹지 고기집을 가지 않지만 중혁은 툭하면 가는곳이 고기집이고 한번가면 사오만원은 깨진다.

30

 

다음